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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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년 3월 27일 ~ 1996년 9월 29일)'는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 문학 작가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다소 독특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그가 '기독교도'라는 사실이다. 아니, 전 세계에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러냐 싶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면 독특한 일이다. 일단 일본에서의 기독교 신자 비중은 전체의 고작 1퍼센트에 불과하다. 전체의 약 20퍼센트(개신교 기준)가 기독교인 한국과 비교해 보면 어마어마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일본에는 기독교 비중이 적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토속 신앙인 '신도(神道)'나 불교를 믿는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건 어찌 보면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엔도 슈사쿠는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이모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밝히기를 그때 당시에는 너무 어렸던 탓에 기독교가 뭔지 잘 모른 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후에 어른이 되고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신자가 되었지만 말이다. 무튼, 엔도 슈사쿠는 1949년에 여러 번의 재수를 거쳐 게이오 대학에 입학하고,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장학금으로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다. 유학 이후에는 꿈에 그리던 작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1955년에는 <백인>이라는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유명해졌고, 뒤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한 일본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린 <바다와 독약>을 통해 문학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고 한다.

이러한 엔도 슈사쿠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세속과 종교를 적절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이다. 즉,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도가 아닌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힘든 일을 겪게 되면 흔히 신을 원망하곤 한다. 왜 신은 우리가 고통스러워할 때 도와주지 않는 걸까? 이런 질문은 신자건 비신자이건 간에 공통적으로 품게 되는 질문일 것이다. 신자 입장에선 신을 긍정하기 위해, 그러니까 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저런 질문을 할 것이고(신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고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비신자라면 신을 부정하기 위해, 그러니까 신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신은 우리가 고통스러워할 때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런 질문을 할 것이다. 오늘 다룰 엔도 슈사쿠의 <침묵>도 이런 '신의 침묵'을 진지하게 다룬 책이다.


<침묵>은 17세기 초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가 일본으로 선교하러 갔다가 실종된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행방을 찾기 위해 몰래 일본으로 잠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일본은 쇄국 정책으로 인해 외국인의 기독교 선교 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드리고와 그 동료들은 이런 위협을 무릅쓰고 일본으로 향한다.


예상대로 일본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부터 길잡이로 같이 온 '기치지로'의 기지와 일본 내 기독교인들(현지인)의 덕택으로 무사히 잠입에 성공한 로드리고 일행이었으나 이내 관리들에게 탄로 나고 만다. 문제는 로드리고가 잡혀 간 게 아니라 이들을 숨겨 준 마을 주민들이 잡혀갔다는 거다. 신자들은 배교를 종용하는 관리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무참히 처형 당한다. 일종의 순교를 한 셈인데 어째서인지 로드리고는 신자들의 순교에 괴로워한다.


처음 일본으로 향하는 길에서 로드리고는 희망을 품었다. 일본에서도 기독교의 꽃이 필 것이라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느님은 결코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계속된 처형과 탄압에 로드리고는 의문을 품게 된다. 저들은 신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건만, 정작 신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신은 왜 우리의 고통에 침묵을 지키는 걸까?


이 작품의 묘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신의 침묵에 의문을 품고 괴로워하는 로드리고의 심리 묘사가 굉장히 탁월하다. 다른 기독교 관련 작품에서는 그럼에도 언젠가 신이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는 약속에 더 신경을 쓰지만 이 책에서는 여과 없이 '신의 침묵'을 보여주며 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신의 침묵을 제대로 보여 준 것은 마음에 들었지만 이에 대한 작가의 답이 영 찜찜했다. 신이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 건 우리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받느라 침묵하고 있다는 거라는데... 흠...... 해피엔딩이나 극적인 결말을 바란 건 아니지만 그닥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인간이 신을 믿는 건 결국 절망하기 위해, 그저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된다. 즉, '인간은 고통에 순응하기 위해' 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실제 작중에서의 로드리고도 역시 이런 현실에 순응하고 만다. '배교'라는 건 형식적이고,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고통과 함께하면 그게 믿음이라면서 말이다. 물론 내가 기독교도가 아니라서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저런 결말이 신의 침묵에 대한 대답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앞으로도 좀 더 심사숙고해 봐야겠다.


이 바다의 무서운 적막함 위에서 저는 하나님의 침묵을 느꼈습니다. 비애에 빠진 인간들의 소리에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도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고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을... (중략) 마른 입술 사이로 기도 소리가 쓸쓸하게 떠올랐다. ‘주여, 이 이상 그들에게 시련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에게 이 고통은 너무나 무겁습니다. 오늘까지 그들은 힘겹게 참아왔습니다. 연공이나 부역이나 비참한 생활도 부족해서, 지금 그들에게 이 이상의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뜰 안의 정적과 매미 소리와 파리의 날개 소리였다. 한 인간이 무참히 죽었는데도 바깥세상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전과 다름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바보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순교란 말인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왜 당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저 애꾸눈 농민이 오로지 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정적이, 이런 고요가 계속되는가? 이 한낮의 고요함, 매미 소리, 이런 어리석고 참혹한 일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듯이 그분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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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의 자두가르 2
토마토수프 지음, 장혜영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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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한 권이었다. 과연 시타라는 몽골을 뒤흔들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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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주부도 7
오노 코스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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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하고 7권은 읽지 못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믿고 보는 <극주부도>인 것 같다. 간만에 너무 재밌게 읽었다.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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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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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물론이거니와 풍부한 주석과 해석이 최고였던 책.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본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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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철의 왈츠 5 - 시프트코믹스
모리노 키코리 지음, 나민형 옮김 / YNK MEDIA(만화)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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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완결이다. 아쉬운 마음이 들고 뭔가 급하게 끝나는 분위기라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무사히 완결까지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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