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눈앞의 현실은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마음만 긍정으로 채운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돈 때문에 생긴 위기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어떤 문제 앞에서 그 문제에 대한 답은 매번 다를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긍정마인드를 옆에 두고 싶은 이 이상한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게 되는, 이게 답은 아닌 것 같은데 답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 확신은 없는데 이 긍정이 나에게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될 것만 같은. 자꾸 말이 두서없이 나와서 나도 당황스러운데, 이 말 뭔지 알지? 어쩌자고, 작가는 이렇게 대책 없이 용기 내고 싶은 이야기를 또 내놓았는가 싶다.


오랜만에 고향 대전으로 내려간 솔은, 오래전 그 시절의 비디오 대여점 <돈키호테 비디오>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하긴 지금이 어느 시대냐.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을 검색하고 필요한 것을 보고 듣고 하는 시대에 비디오 대여점이라니. 비디오 플레이어도 구경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면서, 비디오 대여점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하지만 솔이에게 <돈키호테 비디오>는 그냥 비디오 대여점이 아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라만차 클럽으로 뭉쳐 놀던 곳,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장 돈 아저씨가 항상 이야기를 들어주던 곳, 엉뚱한 이야기조차 실현할 수 있는 기대감으로 바꾸어주던 곳 아니었던가. 그곳이 이제는 사라졌다. 그 시절의 친구들은 물론 돈 아저씨조차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아무도 돈 아저씨의 행방을 모르고 있던 그때, 솔이는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을 만나고, <돈키호테 비디오>가 있던 건물의 건물주 성민을 만난 후 결심한다. 아저씨를 찾아야겠다고. 그 시절,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아저씨,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아저씨의 그 말이 필요한 솔이에게 운명은 말한다. 아저씨를 찾으라고, 무엇이 되었든 아저씨를 찾아야만 변하게 될 것 같은, 지금의 절망을 뒤바꿔놓을 인생을 품어보라고.


소설은 방송국 PD로 일했던 솔이의 경력을 배경으로, 솔이의 유튜브 방송이 시작된다. 아저씨를 찾기 위해 <돈키호테 비디오>의 역사, 주인공들, 아저씨가 필사하던 소설을 낭독하며, 방송을 보는 모든 이들이 그 시절의 자신들을 찾아 나선다. 물론, 사라진 아저씨를 찾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 아저씨가 남겨놓은 공간에서 아저씨의 흔적을 찾으며, 대한민국 방방곡곡 아저씨를 알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로, 과거의 아저씨를 만나고 아저씨의 역사를 듣는다. ,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인생을 살아왔구나, 항상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아저씨의 마음은 이런 거였구나 싶을 정도로, 아저씨라는 사람을 점점 더 알게 된다. 그러면서 궁금해진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온 아저씨는 무엇을 찾아간 걸까. 지금 어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쓰고 있을까.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숭고하다. 그것이 돈키호테의 존재 이유니까. 아저씨의 필사노트로 완독한 돈키호테의 주제 역시 꿈을 향한 모험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쉰 살이 넘은 시골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길을 떠나는 설정 자체가 꿈꾸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일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지금 나 스스로가 돈벌이도 안 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한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나의 돈키호테 134~135페이지)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인생의 절망을 가득 안고 있던 솔이가, 어릴 적 자신에게 꿈을 심어주던 돈 아저씨를 찾아다니면서 찾아가는 새로운 꿈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 그들 역시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어디 한 구석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을 이 기회에 찾아가고 있는, 이 모험에 참여한 누구라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을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이들의 모험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어차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꿈과 용기를 다시 찾게 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될 것을 알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가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이미 많은 독자가 읽었을 불편한 편의점시리즈 역시 누군가의 꿈과 다시 일어설 의지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이전의 작품들도, 이후의 작품들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만족스럽기는 했다. 그런데도 이번 작품이, 뻔한 결말과 감동일 것을 알면서도 읽게 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여전히 우리는,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헤매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이렇게 누군가가 용기를 붙잡고 달려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어쩌면 지금 나에게 수시로 찾아와 주어야 할 이야기가 여기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번의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는지 모르겠다며 짜증만 늘어가는 요즘이었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다고 지금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아직 밥을 굶지는 않으니 괜찮겠지 싶다가도, 다시 병원 생활이 시작될 것 같으니 번잡스러운 마음으로 갈등하지 말고 차라리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게 머리가 덜 아프겠지 하다가도,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꾸만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대로 있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이 나이에도 이런 고민과 갈등으로 내 속을 긁어대고 있는 게 나잇값 못하는 것만 같고. 한숨만 푹푹 나오던 때 저자의 마법 같은 주문에 또 한 번 걸려들었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가 누구나 흔하게 마음먹을 수 있는 용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걸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이러니 쉽게 용기 내기가 어렵다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냐고 화를 낼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이미 알겠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바닥을 치는 마음을 끌어올리고, 사라져 버린 꿈과 용기를 찾아와야만 하는 인간이기에.


……여기 꼭 와보고 싶었단다. 돈키호테가 잉태된 이곳, 세르반테스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보낸 이곳이 내게 용기를 줄 수 있겠더라고.”

어떤 용기요?”

네가 말한 그 돈키호테의 열정. 어쩌면 광기. 그러니까 싸울 수 있다는 용기. 정의와 자유를 위해 거악에 맞서는 선한 힘이라는 용기.” (나의 돈키호테 384~385페이지)


솔이는 돈 아저씨를 찾아다니며 일상의 회복까지 찾아냈다. 아마 솔이 자신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시작한 일은 아닐 테다. 해야만 했으니까, 지금 이 아저씨를 찾아내지 않는다면, 다시는 용기 내고 꿈을 이뤄가는 일이 두렵기만 할 테니까. 지금 무엇이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가 되어 있겠지 하는 막연함과 막무가내 도전이 아니었을까. 솔이 옆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의미의 여정이었을 것 같다. 그들 각자의 일상에서 하나쯤 더 채워갈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읽으면서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 씨가 많이 생각났다. 노숙자 행색으로 편의점 사장님의 손길을 받는다는 게 기적 같았다. 우리 사는 세상 속에 그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기적으로 다시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사람도 생겼으니, 누군가의 손길 하나는 기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기억하곤 했다. 이제 그 기적 리스트에 작가의 작품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된다. 그 시절의 우리에게 돈키호테가 되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세월이 흘러 우리도 누군가에게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고 믿으며, 어쩌면 나 스스로 돈키호테가 되어 세상과 맞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솔이의 말처럼, 그 긴 이야기에 돈키호테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로시난테와 둘시네아, 목동들과 여관 주인, 이발사와 신부, 하녀와 공작부인처럼, 많은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우리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언제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나의돈키호테 #김호연 #나무옆의자 #한국소설 #한국문학 #소설

#책추천 ##책리뷰 #불편한편의점 #불편한편의점2 #그시절의우리를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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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5-13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 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셨군요. 계속 버티시다보면 좋은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저도 그래야만 하고요. 나잇값 못하는것만 같다는 표현에 울컥했네요ㅠㅠ 부디 힘내시고 저와 함께 정신승리하시죠🙂
 
새들의 집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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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모으는 방법을 모른다. 가진 돈을 아끼면서 쓰고 저축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돈을 모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여기에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그렇게 모아봤자 오르는 물가,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는 없다. 지금 사는 곳 가까이에서도 신축 아파트 분양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한 번도 청약을 넣지 못했다. 지금도 H사의 아파트가 내가 사는 곳 바로 옆에 신축으로 올라가는데도 청약을 꿈도 꾸지 못했다. 당첨이 문제가 아니라, 당첨 후의 감당해야 할 것들을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다들 비슷하게 말하기도 한다. 일단 당첨되고 봐야 한다고, 안 되면 도중에 팔면 된다고. 하지만 쏟아지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서, 입주 시기 가까워지니 분양가보다 낮게 팔려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 보면 무섭다. 본인도 감당 못 했기에, 투자를 의미로 던졌을 그 집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 어릴 때 하던 부루마블 게임 알지? 그것도 봐. 땅 먼저 따먹고 건물 먼저 짓는 놈이 이기는 거야. 세상이 그거랑 크게 다를 것 같아?”(54)


비둘기도 다만 한 줌의 땅이라도 내려앉아서 먹이도 먹고 물도 마셔야 사는 거지. 인간도 저녁에는 돌아와 쉴 집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근데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집 싹쓸이해서 책임도 안 지는 게 새 발목 자르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허공 위 구름에 사는 사람도 있어요? 집이 열 채든, 백 채든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닙니까?”(212)


아이의 교육이나 장래를 걱정하던 평범한 주부 은주가 주변 사람들의 투자(?)에 눈을 뜨게 된 건, 지금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의 주변 환경이 말해주고 있었다. 남편의 서울 발령을 앞두고 아이와 먼저 초월시로 이사한 은주는, 남편이 사는 집이 팔리지 않아서 현재 초월시에서 월세로 거주 중이다. 아이는 새 학교와 친구들에 만족하지만, 아이 친구 엄마가 작은 집 월세로 사는 아이와 놀지 말라고 했다는 말에 결심한다. 망설이기만 했던 아파트 투자를 자기도 해보겠다고. 이미 은주의 친구 혜경은 부동산 투자로 돈을 좀 만졌다고 했고, 직장 선배 민정도 이 분야에서 돈을 굴리면서 은주가 부러워할 만한 거주 환경을 완성해 놓았다.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부동산 투자 강의도 들으면서 가장 가깝고 잘 아는 곳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은주였다. 그것도 지금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갭투자로 몇 채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계약서를 하나씩 불려갈 때마다 뿌듯했다. 대기업이 초월시로 들어오기로 하자 집값도 계속 올라갔다. 남부러울 게 없던 그때, 나락으로 떨어질 사건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은주의 아파트. 동대표는 집값 내려간다고 입주민들 입단속을 하고, 햇살 따뜻한 곳에 나와 있던 할머니들의 의자를 치우기도 한다. 보기 흉하다면서, 이런 것만 보인다면 집값 떨어진다면서 말이다. 아파트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부터, 갑자기 에어컨 실외기가 화단으로 떨어지고, 어느 집주인은 비어 있는 집에 청소하러 왔다가 귀신을 보고 기절한다.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산다고, 회색빛을 한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은주의 딸 지안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질감 없이 술술 읽히는 이 소설이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들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이게 대부분 사실이었으니까. 특히 빌라 전세 세입자들이 피눈물을 쏟아내게 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법의 교묘한 틈을 파고들어 돈을 챙기는 악마 같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숨어 있었다.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잘도 살아간다. 이런 걸 보면 부동산이 부의 축적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말이 진리가 되는 순간 내 집 한 칸 구하려는 사람들의 눈물은 더 많아질 것 같고, 그 눈물을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들 역시 더 늘어날 것만 같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모으는 방식을 어디까지 참견하고 제재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언젠가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사장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냥 여윳돈 있어서 하나 사두려고 하는지(Buying), 실거주 목적으로 이사를 계획하는 건지(Living) 물었었다. 당연히 내가 살 집을 구하려고 방문했던 곳에서 들었던 이 낯선 질문이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그때는 참 순진했다.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살면서 세입자를 들이는 이들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다. 누구나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누구나 세입자를 들이고, 누구나 부동산으로 돈을 쌓을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그냥, 이 소설을 읽고 있다 보면 정말 은주처럼 부동산 투자에 발을 들여서 차익으로 부를 쌓는 게 현명한 건지, 무리해서 덤비는 것보다 나 쉴 집 한 칸 있으면 만족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기에 헷갈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복선처럼 들려왔던, 은주가 기대했던 호재에 찬물이 끼얹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예상했던 반전이 일어나니 나부터도 기절할 것 같았다. 은주의 딸 지안이 엄마의 손목에 끈을 묶어놓았던 것처럼, 엄마가 새처럼 날아갈까 봐 걱정했던 것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다행인 건 은주에게 이 일은 잘 마무리되었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현실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설 속 결말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준비를 하고 시작해야 하는지 경고해 주는 느낌이고, 지금 은주와 같은 위기에 빠진 사람이라면 어서 그 늪에서 빠져나오라는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부동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또 다른 사회 문제와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게 그대로 보여서 뉴스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뭐가 됐든, 삶의 우선순위를 정한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판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새들의집 #현이랑 #황금가지 #민음사 #문학 #소설 #한국소설 #부동산

##책추천 #책리뷰 #가독성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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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5-07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동산, 재테크랑은 관계없는 사람이랑 읽고 나면 어떤 마음일지...!
반전이 궁금하네요

구단씨 2024-05-11 23:24   좋아요 1 | URL
반전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절로 감지하게 됩니다. ^^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얘기라서 푹 빠져 읽었어요.
이거 보니까, 무리하게 욕심 내지 않고,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이렇게 살아가는 게 답인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폭망의 후폭풍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몇 달 전에 책에 관한 어떤 시험을 봤는데, 모두 주관식이었다. 이미 수업 들은 교재에서 그대로 나오는 형식이라 미친 듯이 외워서 쓰면 되는 거였다. 말이 쉽지, ‘~서술하시오.’라고 하는 문제에 답을 쓰기가 쉬울 리 없다. 그런데 더 어려웠던 건 마지막 문제였다.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소개하라는 거였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이 질문이 가장 어렵더라. 책이라는 게 취향이 있어서 각자 좋아하는 최고의 책이 다를 거고, 또 하찮고 가볍게 들려도 어느 순간에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게 책이라는 거 아니겠나. 그래서 누구에게 함부로 소개해 줄 만한 책이 없다. 내 인생의 책이라고 꼽을만한 것도 없다. 그냥 그때 이 책이 참 좋았다는 정도로 기억하고 느끼곤 했다.


이번에 이 이벤트 보면서도 한참을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선뜻 떠오르는 책이 없어서 망설였다. 그러다가 책장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왔던 책들이 있다. 이 책들이 각자 담은 내용도 다르고,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유치하기까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세상에 이런 책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이 책들을 읽으면서 했던 것 같다. 세상에 필요한 책이라니, 이 정도면 이 책들의 존재 가치가 있는 거 아닌가?




 

 

<미 비포 유>

이번에 개정판이 나와서 더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루와 윌의 로맨스에 설레게 되는, 그냥 로맨스 소설로 여길 수도 있다. 나 역시 그 설렘을 잔뜩 느끼면서 이 소설의 가독성에 감탄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윌이 루에게 전하는 인생의 소중함이었다. 자신이 죽을 때를 정해놓고, 자기를 돌봐주러 온 여자에게 남겨준 건 삶의 가치, 자기 인생을 발전시켜 나가는 기회였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줬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당당함, 노랑 줄무늬 스타킹은 그냥 신으면 되는 거라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생각하고 꺼내라는 말이 이렇게 힘이 될 줄이야. 시골 마을에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꾹꾹 누르며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바꿔놓은 남자. 윌 역시 자기 삶을 자기가 정하면서 떠났지만, 루에게 자기 삶을 완성해 가는 법을 가르쳐줬다. 단순히 재미만 장착한 소설은 아니었다.



<원숭이의 손>

화이트 씨 가족에게 찾아온 모리스 상사는 원숭이의 손을 꺼내놓는다. 소원 세 개를 빌 수 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보였나 보다. 하지만 그냥 소원만 빌 수 있는 건 아니다. 위험하다. 분명 원숭이의 손을 들고 소원을 빌면 이뤄지지만,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얻은 것만큼, 아니 얻은 것보다 더 크게 잃게 되는 게 이 원숭이의 손 법칙이었나 보다. 소원은 소원처럼 이뤄지지 않았고, 쓰디쓴 인생의 교훈만 남겼을 뿐이다. 분량이 짧은 소설이라 가볍게 보면 오산이다. 이 소설에 담긴 메시지는 누가 봐도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이 단순한 메시지가 우리 인생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걸 잊지 않도록 하는 힘이 있다. 중요한 것을 읽고 나서 후회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끝이 없는 호기심에 또 다가서는 게 인간이라는 이 아이러니는 뭔지...



<개의 심장>

인간의 뇌와 고환을 개의 몸에 이식시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소설의 주인공 필리쁘 필리뽀비치 교수는 그의 숙원이었던 이 연구를 실행한다. 수술을 성공시키고 수술의 예후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과연, 이 수술은 성공적이기만 했을까? 인간의 뇌와 고환을 이식받은 개는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인간의 이름도 얻는다. 두 다리로 서고, 인간의 옷을 입고, 걷는다. 하지만 개로 살았던 본성은 변하지 못했다. 예절도 없고, 아무 데서나 소변을 보고, 여성을 희롱한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이 떠돌이 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거다. 1920년대 러시아 사회가 배경이 되어, 인간이 된 개의 모습으로 이 혼란을 정리하려는 필리쁘 필리뽀비치 교수의 마지막 시도가 인상적이다. 잘못된 것을 되돌려 놓으려 애썼지만, 아무 일도 없던 처음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상처 자국만 더 선명해지고 늘어났을 뿐이다. 인위적이고 강압적으로 시도하는 일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다. 재미도 있었지만, 개의 변해가는 모습과 태도가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다.



<제가 한번 해 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으로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만났다.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불편하고 어려운 부분을 같이 경험하는 내용이다.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내가 잘 알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던 순간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라는 깨달음. 우리 삶에 너무 닿아있는 모습을 담아냈기에 더 귀한 책이었다. 세상의 정의를 외치면서 앞에 서지는 않아도,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지는 않아야 하는 다짐을 더 하게 만든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이 그대로 담긴 책이다. 그의 경험에 더해진 사진들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매우 힘들어 보였던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힘듦을 공감하는 건 당연했다.


인생 책이라고 하면 어떤 책을 떠올려야 할지 항상 고민되는데, 그냥 그 순간 생각나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기억에, 마음에 남은 책이 아니라면 그렇게 떠오르지 않을 테니. 장르를 떠나서, 어떤 책이든 우리 인생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르침을 준다면 그게 최고의 책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책의날 #인생네권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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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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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 나이 먹고 고집만 세져서는...’ 언니가 엄마와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마다 하는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나이 먹으면 다 저런 건가 싶은 생각에 그저 지켜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를 먹어갈수록 변화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성격이 변한다고 해야 하나. 기억력이 감퇴하고,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건 당연했다. 가끔은 민망할 정도로 억지를 쓰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어느 상점에서는 진상 손님 짓 하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 이 사람이 우리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언젠가부터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보일 때가 있더라. 이런 변화를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테다. 나와 관계없는 어르신들, 누군가의 부모님들, 많은 이가 경험했거나 느끼고 있을 변화일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모른 척할 수 없는 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 어쩌면 언젠가 내가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는 종래의 관점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노인이라는 말 대신 다른 호칭을 제안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령자 씨입니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말과 행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런 뉘앙스를 담은 말입니다.” (17)


저자는 나이 든 이들을 노인이 아닌 고령자로 부른다. 일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비단 일본의 문제에 국한되는 건 아니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보는 현상이라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서 고령자 씨에게 찾아오는 변화, 그 변화가 다른 세대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의 키워드라고 부제를 달아놓았지만, 그 많은 키워드 속에서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먼저 찾아보게 된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어려워하는 일, 때로는 이렇게 쌓아두거나 주워 오는 쓰레기로 집에 쌓아두는 저장강박증, 뻔히 보이는 의심과 보이스 피싱에 더 잘 노출되는 일, 고집이 세고 화가 많은 건 자주 보이는 성격이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기에게 불리한 기억은 쉽게 잊는 게 가능해지는지... 많은 증상과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는 고령자 씨 자신의 자율성이 아닐까.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 아직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의 쓸모 있음, 자기 효능감은 그들에게 운전대를 놓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과 지능의 감각은 점점 떨어져 온 게 사실이니, 이로 인한 교통사고의 위험성에 더 가까워졌다.


보이스 피싱은 어떨까.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법으로 젊은 사람들도 당하고야 마는데, 고령자 씨 역시 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의심스러운데 당하고야 마는 일이 왜 반복해서 일어날까. 고소득을 보장해 주겠다거나, 당신 자녀가 회사 공금에 손을 댔다거나 하는 등의 뻔한 속임수에 빠지는 일에 왜 자꾸 속는 걸까.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성인이 되고 독립한 자식에게 고령자 씨는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의지가 되어줄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고 싶은 의욕,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활동으로 자신감을 갖고 싶어 한다. 보이스 피싱은 고령자 씨의 이런 의욕과 열정에 자극을 불어넣고 악용하는 경우다. 저자의 말처럼, 사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자신감 과잉이 보이스 피싱 같은 사기에 노출될 위험을 높이는 거라고 한다.


왜 짜증을 내고 화가 늘어날까. 흔히 나이 먹으면 다 그런다는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내가 경험한 고령자 씨의 괴팍한 성격 변화는 두 가지였다. 젊을 때 괴팍하던 사람이 나이 들고 더 괴팍해졌거나, 젊을 때 안 그랬던 사람이 나이 들고 괴팍해졌거나. 어쨌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나이 들고 괴팍해진 건 맞고,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젊었을 때 점잖았던 사람도 고령자가 되면 부쩍 짜증과 화가 많아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지고 인지 기능이 쇠퇴하면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고, 자기 쓸모없음을 생각할수록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누적되어 짜증이 쌓인다고. 이렇게 쌓이다 보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져 화가 표출되는 거라고 말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엄마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엄마는 나이 들어 몸의 이곳저곳 고장이 나고, 병원 드나들 일이 많아지면서 확실히 짜증이 늘었다. 본인 마음처럼 되지 않는 몸의 불편함과 그에 따라오는 우울감과 좌절감이 수시로 화가 나는 듯했다. 육체의 노화로 생기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건데,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상실감이 커진다.


하나하나 찾다 보면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을 거다. 마음을 건드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육체의 불편함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더 큰 일까지. 고령자 씨를 둘러싼 문제는 한 가지로 진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둘 방안을 모색하면서, 고령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섬세하고 다정한 접근법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해와 소통이 바탕이 되어 오해나 착각을 일으키지 않고,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고령 운전자에게 운전을 그만두기를 강요하기보다는 다른 활동을 추천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도록 조언하거나, 고령자가 자기 유리한 것만 기억한다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불안과 위험을 인지하고 긴장하면서 살아왔던 거에 비해, 나이 들고 남은 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무의식에 일어나는 기억 저장법이었다. 보이스 피싱 대처법으로는 수상한 전화에 응대하지 말고 자녀와 먼저 통화하는 규칙을 정해 위험을 차단해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해야 한다.


나이가 들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이는 현상들에,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서 오해와 소통의 부재가 쌓인다는 게 문제의 시작인 것 같다. 신체 능력과 인지 저하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나이 듦의 증상이라면, 이것을 시작으로 자존감, 자율성, 자기 효능감 저하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가족 돌봄의 문제까지 고려하면, 부모와 자식 세대가 함께 하면서 부딪히는 일은 더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가족이 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 관념은 불만과 갈등 유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돌봄을 받는 대상이나 돌봄을 행하는 가족이나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모두가 만족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노화를 자각하고 인정하면서, 돌봄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역시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을 정도만 살다 가고 싶다고 쉽게 말했는데,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100세 시대에 고령자의 특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돌봄의 대상과 역할을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게 필수라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고령자 씨에게 필요한 건 삶의 목적이다. 사소하더라도 살아가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에 맞게 자기 생활을 주도하면서 살아가게 되면서 심신의 건강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삶과 일상의 자기 결정이 삶의 목적만큼 중요하며, 이는 고령자 씨의 자존감이나 자율성 등의 다양한 심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고령자 씨를 보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게 되어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늙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분명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215)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이해. 무조건 이해하라고 하면 나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왜 이해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나면 고령자 씨를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가까이서 보면, 나의 엄마가 편안하고 행복할 때 나도 덜 불안하고 편안하다. 엄마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말, 이유도 모른 채로 짜증 내는 것을 듣고 있을 때는 덩달아 나의 스트레스도 치솟는다. 서로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행복한 노년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고령자 씨를 이해하는 일은 필요하다. 나의 미래를 미리 보는 일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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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 : 벨몬트 아카데미의 연쇄 살인
서맨사 다우닝 지음, 신선해 옮김 / 황금시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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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은 기억이 난다. 학점 제대로 못 받았다고 부모가 교수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는 뉴스. 군대 간 아들 일로 행보관이나 그 이상의 책임자에게 전화하는 부모가 많다는 내용도 지인에게 직접 들었다. 어느 인터넷 게시글의 댓글에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부모에게 전화를 받아본 상사도 있다는 내용도 본 적이 있다. 성인인 자녀의 일에 부모가 나서는 게 이렇게 흔한 일이었던가. 얼핏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안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내용의 뉴스를 듣는다면 새삼스럽지 않다. 유치원에서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부모의 과도한 간섭은 교육 현장은 물론 사회생활까지 문제를 만든다. 그 문제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녀일 테고 말이다. 이런 극성 부모와 넘치는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만난다면 어떨까.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벨몬트 아카데미. 겉보기에 우아하고 평화롭다. 돈 많은 부모의 기부금과 높은 교육열은, 학생이 최고의 점수로 졸업하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맹렬하게 달리게 한다. 이 달리기에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열심히 참여하지만, 그 영향은 자녀인 재학생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학생의 건방진 태도는 흔했고, 자녀의 점수에 부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간섭하기에 이른다. 학부모들의 돈이 이 학교를 운영하게 만드는 바탕이어서, 벨몬트 아카데미의 선생 대부분은 학부모의 간섭을 차단하지 못한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올해의 교사상을 받은 테디는 이 학교 학생이나 학부모의 건방진 태도를 잘 참지 못했다. 10년 동안 학생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벨몬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올해의 교사상을 제대로 축하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기뻤다. 이 상패 하나로 그의 위신이 달라졌고,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어느 날, 재학생 잭의 부모가 테디를 찾아온다. 잭의 에세이 점수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점수 수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정중하게 거절한 테디는, 다른 방식으로 잭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절대로 그들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어느 나라에서나 극성 부모가 존재하는구나 싶었을 텐데, 뭔가 묘한 분위기가 테디를 감싸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선생이지만 유치한 감정으로 학생을 대하는 듯한, 그가 가진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 누구라도 그의 적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상한 방식의 교류. 그랬다. 테디는 자신이 학생을 위한 방식의 가르침을 행한다고 믿지만, 그 믿음에 부합하지 못하는 대상에게는 그만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응징한다. 학생뿐만이 아니다. 그가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가르침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들은 모두 그의 조용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무슨 선생이 이럴까 싶으면서도, 각 인물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여러 번이다. 모두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 자녀의 점수를 위해서 계획된 협박도 못 할 게 없었다. 부탁을 가장한 은근한 종용도 했다. 처음에는 테디의 어긋난 교육 신념이 이상해 보였는데,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 관계자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상태로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게 과해 보였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고 했던가. 탈이 나고 크게 났다.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는 욕심 부릴 수 있는 목숨조차 없게 되었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다. 열심히 했지만 미운 털이 박혀 점수를 얻지 못하는 학생, 학생 편을 들면서 선을 넘어 간섭하느라 목숨을 지키지 못한 선생, 자녀의 인생 대신 재단해 주려다가 예정에 없던 죽음을 맞이한 학부모, 제 역할 다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다가 목숨을 잃은 학교 관계자 등, 모두가 자기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경찰은 뭐 하고 있기에 이렇게 연쇄적으로, 그것도 학교 안에서 죽음이 판을 치게 놔두고 있었나. 나름 수사도 하고 용의자를 추리고 했건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수사에 계속되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되었다. 작가는 소설의 초반부터 범인을 드러내 주었고, 범행 내용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왜 살인이 시작되었는지 이유도 분명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범인도 이렇게 계속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는 거다. 거슬리는 한 사람을 처단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죽음의 방향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향하다 보니 살인은 이어지고, 범인이 가진 교육 사명감은 한참 멀어진 후였다.


주인공 테디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서술되는데,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보면서 흥미롭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건이 해결되나 싶을 때마다 새로운 사건을 만들면서 반전이 거듭되는 게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범인은 이미 알고 있지만, 여기서 사건이 끝나는 건가 보다 하고 안심하려고 할 때마다 엉뚱하게 꼬여버린 사건들, 예상에 없던 인물의 등장은 이 살인을 절대 끝나지 않을 사건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범인 혼자 나쁜 인간인 건가? 그랬다면 일방적으로 범인만 미워할 수 있었을 텐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범인과 다를 바 없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비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살인도 불사하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 과정이 참 재밌다. 인간이란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 싶어서 말이다.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서로가 고민해 볼 문제를 제시한 소설이기도 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육 관계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 몫을 다하고 선을 지키는 게, 의미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든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부모의 욕심, 많은 과제로 학생의 노력을 평가하려는 교사, 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다 수용해야 하는 학생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궁금한 게 그것인데,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다.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학생이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명문고등학교에서 명문대학으로 진학을 바라고, 그 자신들을 금수저로 인식하며 흙수저출신 교사를 무시하는 학생과 학부모, 그런데도 학교를 유지하게 하는 돈줄인 학부모의 요구를 응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어떻게 깨트릴 수 있을까. 소설의 첫 부분에서, 잭의 부모가 자녀의 점수를 두고 교사와 협상을 하러 왔다는 게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소설 속 이야기로 머무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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